강신주 철학 vs 철학 하이젠베르크 vs프리고진

 

 

기계론적 세계관의 흔들리는 토대

과학혁명을 통해 대두한 근대 자연과학은 서로 밀접하게 연관된 두 가지 특이성으로 규정될 수 있다.

하나는 양적이라는 특징이고, 다른 하나는 기계론적이라는 특징이다. 

 

- 인간의 구체적인 경험은 모두 질적인 것이다.

- 사과와 바나나의 질을 모두 고려하면, 우리 앞에 있는 것은 두 개라고 이야기할 수 없다.

- 질을 무시하면 양을 경험할 수 있고, 양을 무시하면 질을 경험할 수 있다. 

- 인간이 감각적으로 경험하는 모든 질을 양적인 관계로 합리적으로 설명될 수 있다는 것이 근대 자연관의 핵심이다.

- 양적인 관계로 주어진 것을 합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바로 수학이다.

- 다시 말해 질적으로 다양한 것으로 경험되는 자연현상들을 측정 가능한 양적인 관계로 환원하고, 이렇게 얻어진 양적인 관계를 수학적 법칙으로 파악하려고 하는 것이 근대 자연과학의 특징이다.

 

기계론적

- 수학적이라는 특성은 근대 자연과학에 기계론적이라는 또 한 가지 특성을 부여한다.

- 시계공은 시계를 만든 다음 그것에 관여하지 않는다. 그러니 남은 사람들은 시계를 분해하고 결합해서, 시계의 작동원리만 알면 된다. 시계의 작동원리가 시계를 만든 시계공의 속내가 되기 때문이다.

- 태엽을 감은 양을 정확히 측정하면 언제까지 시계가 작동하는지 알 수 있는 것처럼,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면 결과도 정확히 예측된다는 것. 이것이 기계론적인 근대 자연과학의 핵심이다.

- 이런 정신을 가장 명료하게 표현한 사람의 프랑스의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인 라플라스다.

 

질을 무시하고 양을 강조하는 양화에의 의지와 결정론적 인과론을 피력하는 기계론적 확신이 붕괴되어야만, 근대 자연과학은 골리앗처럼 땅에 고꾸라질 것이다.

 

하이젠베르크: 미시세계는 확률이 지배하는 불연속적인 세계이다.

미시세계는 파동 함수의 확률적 세계가 지배한다.

다수 세계론 또는 가능 세계론을 피력한 이유는 관측의 세계, 즉 거시 세계에도 파동 함수가 무의미해지지 않도록 하려는 생각에서였다.

양자역학은 근대적 자연과학에 양자 도약의 불확실성, 그리고 파동 함수의 확률적 세계라는 비수를 던졌다.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면 결과는 기계론적으로 도출된다는 기계론적 인과론은 양자역학의 발달로 죽은 개 취급을 받게 된 것이다.

 

프리고진: 무질서는 파괴뿐만 아니라 생성도 가능하게 한다.

- 비가역성, 자연은 항상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변한다.

- 여기서도 라플라스가 강조했던 결정론적 인과관계란 성립되지 않는다. 이런 자연과학의 맹점을 파고들어 생성을 강조했던 화학자가 프리고진이다.

- 고전역학이든 양자역학이든 실제로 살아 움직이는 자연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통제된 자연만을 다루고 있다. 즉 인위적으로 통제 가능할 때만 가역성은 확보 가능하다. 양자역학의 시간도 고전역학과 같이 가역성의 시간 차원에 속한다.

- 프리고진 입장에서 결정론적 인과율은 확률론의 도입으로 흔들 수 있지만, 질적인 것을 복원하지 ㅇ낳고는 근대 자연과학의 기초를 뒤흔들 수는 없다. 그래서 비가역성에 기초를 마련하는 엔트로피 개념이 중요한 것이다. 

- 엔트로피는 질적인 확률론에 토대를 두고 있다. 그 자체로 엔트로피 개념은 근대 자연과학의 토대였던 양적인 결정론을 극복하고 있었던 것이다.

- 비평형 상태에서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순간, 새로운 질서가 자발적으로 탄생한다. 

- 과거 현재 미래가 결정론적으로 연결된 곳에서는 새로운 질서의 탄생, 즉 생성이 사유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자연과학, 형이상학, 그리고 정치철학

- 미시세계와 거 시계계라는 구분은 구조적으로 물자체와 현상 세계라는 칸트의 구분과 유사하다.

- 다수 세계론은 둔스 스코투스나 라이프니치의 가능 세계론을 연상시킨다.

- 물리학이 미시계계의 양적 변화에 집중한다면, 화학은 거 시계계의 질적 변화에 관심이 많은 학문이다.

- 미시세계의 불확정성이 거시계의 확정성으로 이행한다는 점에서, 슈뢰딩거나 대의 민주주의자의 입장은 유사하다.

- 에버렛의 입장은 현존하는 세계를 묵묵히 수용하는 보수적 측면도 있다.

- 프리고진의 입장은 더 급진적이다 

- 이렇게 서로가 비슷한 것은 인간의 사유가 나름대로 일관성에 따라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구조적 차원에서의 일관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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