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주 철학 vs 철학
유전자의 논리를 넘어서 생명의 논리로
- 베르그손은 생명이란 문제 해결의 과정이라고 이야기했다.
- 문제란 특정 생명체에게 사전에 미리 결정될 수 없는 그 무엇, 미지의 사건들과 관련된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미지 혹은 미래의 사태이면서 또한 동시에 생명체가 자신의 생명을 지속하기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로 주어진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 촉각을 가진 달팽이라는 생명체 자체가 이미 생명의 문제 해결의 결과일 것이다.
- 그렇다면 지금 달팽이 자체는 엄밀하게 보면 과거의 존재 혹은 과거의 흔적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 이 달팽이가 지금 만나고 있는 문제는 그의 미래를 구성하는 것이다.
- 지금 자신이 봉착한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달팽이와 문제는 서로 변하게 될 수밖에 없다.
- 중요한 것은 문제 해결의 결과로써 주어진 한 생명체에게 그 해결된 문제는 이미 회복 불가능한 흔적으로만 남게 된다는 점이다.
- 유전자의 논리로 대표되는 현대의 자연과학적 탐구가 근본적 한계에 부딪혀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하는 지점이며, 생명에 대한 철학적 숙고가 다시 필요한 지점이다.
- 베르그송이 말한 문제에 접근하기 위해서 우리는 문제라는 것을 전혀 알 수 벗는 미지의 어떤 사건으로 사유해야 한다.
- 문제와 생명체와의 관계는 무한과 유한으로 규정될 수 있는 비대칭적 차이의 관계라고도 말할 수 있다.
- 이 대칭적 차이의 관계에서 비로소 생명의 논리를 사유할 수 있다.
도킨스: 인간은 유전자의 매체에 불과하다.
- 도킨스는 유전자의 최종 목적은 자기 복제, 즉 영원한 생명을 누리려는 데 있다고 단언한다.
유전자는 자기 복제자이고 우리는 그들의 생존 기계{인 것이다. 가령 그의 생각이 타당하다면, 인간의 모든 사유와 행동의 진정한 주인은 우리 자신이라기보다 영원히 살려고 하는 이기적인 책략가 유전자라고 해야 할 것이다.
- 생존 기계를 잘 만든 유전자들만이 영속적으로 생존할 수 있다.
- 치명적 약점: 어떤 생명체가 환경에 적응하여 존재한다면, 그는 이것이 모두 유전자가 생존 기계를 만드는 데 탁월했다는 증거라고 해석한다. 하지만 유전자는 환경의 변화마저도 예측하면서 가장 합리적인 생존 기계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없다.
- 유전자는 앞날을 내다보고 합리적 계산에 따라 생존 기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고려하지 않았던 요소들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데 성공함으로 써 운이 좋아 생존할 수 있게 된 것뿐이다.
마투라나: 진화는 자연선택이 아닌 자연 표류의 결과이다.
- 마투라나의 주장 가운데 철학적으로 중요한 것은 니체의 관점주의를 연상시키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 모든 생명체는 자신의 탄생과 함께 각각 하나의 세계가 주어진다.
- 마투라나는 자신과 자기만의 세계를 만드는 생명체를 자기 생산, 즉 오토 포이에시스라고 정의한다.
- 도킨스의 생명체는 유전자에 의해 지배되는, 다시 말해 유전자가 만든 생존 기계 따라서 헤테로 포이에시스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도킨스가 유전자를 생명체 안의 신과 같은 존재로 보았던 것과는 달리. 마투라나는 유전자가 세포의 구성 요소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다시 말해 유전자는 생명 현상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기는 하지만 유전자만으로 모든 생명 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는 뜻이다.
- 알튀세르나 마투라나는 전체를 결정하는 것은 비록 결정적인 요소는 있다고 할지라도 전체 자체일 수 없다는 입장을 공유하고 있었다.
- 세상에 떠도는 예술가들처럼 생명은 자신의 경로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것들과 결합함으로써 새로운 형태로 자신을 만들어나간다.
- 마투라나: 진화에는 어떤 계획도 미리 주어지지 않는다.
- 마투라나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생명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동적인 자기 생산의 능력이다. 이런 능력이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외부와의 우발적인 마주침에 상당 부분 의존하기 때문이다.
뉴로 부디즘 혹은 시냅스와 해탈
- 우리 시대 존재론은 바로 우발성이라는 개념으로 수렴된다.
- or로 상징되는 이접적 상태에서 마주침이 발생하고 그리고 그 마주침이 새로운 연결을 만든다. 다시 말해 and로 상징되는 연접적 상태가 도래하는 것이다.
- 한번 만들어진 뉴런은 우리가 죽을 때까지 변하지 ㅇ낳고 함께 간다.
- 기억이란 특정 행동과 특정 연상과 관련되어 시냅스가 만들어졌다는 것 의미한다. 반대로 망각은 그렇게 만들어진 시냅스가 부분적으로 와해되거나 해체되었다는 걸 말해준다.
- 시냅스의 논리에 따르면 뉴런들 사이의 네트워크가 해체되고 새로운 네트워크를 구성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 결국 다른 삶과 다른 자아를 갖고 싶다면, 우리는 특정한 자아를 유지하려는 경향과 맞서 싸워야만 한다. 오직 그럴 때에만 우리는 다른 행동과 다른 사유를 할 수 있을 것이다.
- 불교에서 말한 해탈은 시냅스의 논리로 설명될 수 있다. 그것은 특정 시냅스를 유지시키는 자아 관념을 해소하는 것이다. 물론 해소하려는 것은 거시적 차원에서 타자와의 유대와 연대를 불가능하게 만들거나 훼손하는 특정한 자아 관념이다. 그래서 자아라는 독재자의 지배에서 행동과 사유를 해방시키는 것, 나아가 뉴런들을 해방시키는 것이 바로 해탈이다.
- 타자와 반복적인 상호작용을 해야만 우리는 내면에 새로운 시냅스를 만들 수 있다.
- 거시적 차원에서 주체와 타자 사이의 유대나 연대가 반복적으로 시도되는 것, 그리고 미시적 차원에서 우리 내면에 새로운 시냅스가 만들어진다는 것, 이 두 가지는 동일한 사태의 두 가지 측면이다.
- 내가 타자를 사랑하는 강도만큼, 그와의 관계에 어울리는 내 안의 시냅스들도 쉽게 만들어질 것이다. 거시적 층위에서의 사랑의 정도만큼 미시적 층위에서의 시냅스 생성은 더 활성화 돠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