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주 철학vs철학
"사랑해"라는 말의 내적인 논리
[사랑해라는 말의 의미]
- 너를 사랑해!라는 말에는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고 헌신적으로 너에게 애정을 기울이겠다는 서약일 수도 있지만, 진정한 의미는 나는 당신이 나를 사랑하기를 원해 일 수도 있다.
- 이 대목에의 문제는 내가 관심을 기울인 타자가 나를 좋아할 수도 있고 혹은 나를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는 자유를 가진 존재라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사랑하는 상대방인 타자는 언제든지 나를 버리고 떠날 수 있는 자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 사랑에 빠진 사람은 자신의 애인이 외적인 압력 없이 자유롭게 자신을 사랑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이러한 자유의지에는 타자가 나에 대한 사랑을 자신의 뜻에 따라 자유롭게 철회할 수도 있는 가능성이 함축되어 있다. 이렇기에 사랑에 빠진 사람은 나를 사랑하자마자 그 자유를 포기해야 한다는 불가능한 욕망을 바라게 된다.
[우리에게 사랑이 찾아오는 이유]
- 라캉에 의하면 욕망과 그 대상 사이의 불일치 때문이다.
- 사랑에 빠진 주체는 타자에게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켜줄 무엇인가가 있다고 상상한다. 이런 타자의 실재 모습이 상상과 부합되면, 사랑은 촉발되지 않는다. 그것은 목이 마를 때 물을 마시는 것과 같아서, 욕망이 곧바로 충족되기 때문이다.
- 반면 상상과 실재가 일치되지 않을 때, 그럼에도 타자가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켜줄 수 있다는 상상에 계속 집착할 때, 사랑은 불꽃처럼 타올라 강하게 빛을 발한다는 것이다.
- 즉 사랑은 기본적으로 결여를 전제로 한다고 보았다.
- 타자의 타자성 혹은 타자의 자유는 사랑의 열정을 가능하게 해 주면서 동시에 사랑을 비극으로 만드는 계기이기도 하다.
- 돈으로 살 수 있는 사랑과 그렇지 못한 사랑의 차이를 결정하는 것은 자유의 유무이다.
- 애인이 자유롭기에 구속하려고 했는데, 애인을 구속하자마자 사랑이 식어버리는 역설!
- 타자의 자유를 부정하여 사랑의 비극을 피할 것인가? 아니면 타자의 자유를 긍정하면서 사랑의 비극을 감내할 것인가?
- 전자는 헤겔, 후자는 바디우였다.
헤겔: "결혼과 가족은 불완전한 사랑을 완성한다."
- 자유로운 두 사람이 만나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김으로써 하나의 완전한 가족이 완성된다. 이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실천하고 있는 사랑과 결혼의 메커니즘이다. 그리고 헤겔은 이 메커니즘을 철학적으로 정당화하려 했다.
- 헤겔은 사랑을 두 가지 단계로 나누어 분석을 했다.
- 첫 번째 단계에서 사랑에 빠진 사람은 상대방이 없으면 자신의 삶이 불완전함에 빠질 것이라는 느낌에 빠지게 된다.
- 두 번째 단계 자신을 타자 안에서 발견한다는 것은 타자가 이제 자신을 마음속에 품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상대방도 마찬가지이며 이런 과정을 통해 서로를 사랑하게 된다고 보았다.
- 서로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하더라도 이것은 타자의 자유에 의한 것이고, 언제든지 철회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존재한다. 이런 위험 때문이었는지 헤겔은 서둘러 연애를 마치고 결혼으로 이행하는 장면을 연출한다. 하지만 결혼에도 자유는 존재하기에 그는 이제 부부 사이의 아이 문제를 이야기한다.
- 헤겔에게 아이란 변증법적으로 종합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남편 아내 자식 = 정 반 합)
- 자식은 남편과 아내의 사랑이 객관화된 존재이기에, 아이를 사랑하는 남편과 아이를 사랑하는 아내는 서로를 사랑하는 셈이라는 것이다.
- 번외로 사랑에는 본질적으로 자유가 개입되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에는 자유가 개입되어 있지 않기에 동정, 연민 의무감과 같은 사이비 사랑의 느낌인 것이다.
- 여하튼 헤겔은 두 사람은 자녀에게서 다름 아닌 그 자신들의 사랑을 직감한다고 이야기 하지만 정확히 말해 이 표현은 두 사람은 자녀에게서 다름 아닌 그 자신들의 과거의 사랑을 직감한다.라고 바뀌어야 할 것이다.
바디우: "사랑은 둘의 경험이자 무한히 열린 관계이다."
- 헤겔에게 결혼과 가족은 두 사람이 하나 또는 우리로 결합되는 계기라고 생각했지만, 바디우는 하나라는 것은 둘의 일시적인 효과로 사유될 뿐이라고 지적했다. 하나라는 순간적인 느낌은 둘의 의지가 지속되었을 때만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 스스로 행한 헌신이든 상대방에게 강요한 희생이든 이는 사랑의 관계가 둘의 자유에 근거한 의지 위에 기초하고 있음을 간과한 것이다.
- 사랑은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둘의 사건이다. 둘만이 주인공으로 대두되는 경험은 사랑의 완성이 아니라 사랑의 시작이다. 둘로써 직대 면하게 된 두 사람은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하고 모든 것을 새롭게 경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사랑은 무한하고 완성될 수 없는 관계이며, 하나로 함몰되지 않고 팽팽한 긴장 상태에 있기에 사랑은 둘 중 한쪽이 떠나거나 혹은 죽을 때까지 역동적 경험을 생산할 수밖에 없다.
- 헤겔은 하나로 상징되는 동일성을 추구한다면, 바디우는 둘로 상징되는 차이를 지향하고 있다.
사랑의 철학 혹은 철학의 사랑
- 의사소통에 갇히면서 , 철학은 힘을 잃게 되었다는 것. 날카로운 통찰보다는 안온한 합의를 중시하면서, 철학은 자신이 가진 혁명성을 망각했다는 것. 날카로운 통찰보다는 안온한 합의를 중시하면서, 철학은 자신이 가진 혁명성을 망각했다는 것! 이것이 들뢰즈의 입장이었다.
- 프루스트는 우정과 철학이라는 전통적인 커플에다가 사랑과 예술이라는 커플을 대립시킨다.
- 그는 평범한 사랑이라도 위대한 우정보다 낫다고 이야기한다.
- 공통의 관심사가 있기에 친구가 될 수 있지만 우리는 근본적으로 달라지지는 않는다. 사랑에는 공통된 관심사가 전제되지 않기 때문에 새로운 무엇인가가 발생하는 생성의 기적이 간능하다.
- 들뢰즈는 사랑을 닮은 철학을 하고 싶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