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혁명성 사이에서, 하이데거와 바디우

- 과학은 근본적으로 새로운 시선을 만드는, 따라서 기존의 시선을 폐기하는 혁명성을 가지고 있다. 반면 과학의 혁명성을 추동하는 기술은 유용성으로써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

- 과학은 세계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창조하고, 새로운 진리를 발명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진짜냐 거짓이냐가 아니고, 낡은 것이냐 새로운 것이냐는 구분이 중요하다.

- 하지만 아쉽게도 하이데거를 포함한 많은 철학자들은 과학이 제공하는 새로운 세계에 대해 진짜냐 거짓이냐는 구분 기준을 관철시키려고 했다.

- 하이데거의 문제는 그가 기술의 병폐를 지적하느라 과학의 혁명성을 부정했기 때문이다.

- 소크라테스 이래로 철학은 과학을 비롯한 모든 앎에 비판적 성찰이라고 이해되어왔으며 이것은 철학이 과학의 혁명성을 긍정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디우]

- 바디우는 수학, 시, 정치 그리고 사랑이 진리를 생산하는 네 가지  진리 공정이라고 이야기했다.

- 진리 공정들이 이 네 가지로만 한정될 이유는 없을 것이며, 중요한 것은 철학이란 다양한 진리 공정들에 대한 숙고나 성찰에서 출현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 철학은 다양한 진리 공정들이 각자의 자리를 잡고 서로 소통할 수 있는 통일된 개념적 공간을 마련하는 데 있다.

- 과학의 세로운 세계의 창조는 두가지 흐름을 만든다. 과학이 제공하는 새로운 세계에 대해 불신하는 입장 그리고 과학이 열어놓은 새로운 세계를 긍정하며 그것을 포괄하는 새로운 철학적 전망을 모색하는 철학적 입장.

- 전자는 쉽기에 많은 철학자가 그 입장을 따랐으며, 후자는 그 세계와 소통할 수 있도록 시, 정치, 사랑을 다시 숙고해야만 하는 지난한 과정에 빠지게 되었다.

 

[역사]

- 과학과 철학에는 역사가 있다.

- 역사는 낡은 세계와 새로운 세계라는 역동적인 생성과 창조의 과정만이 숨을 쉬는 곳이기에 거짓된 세계와 진짜 세계로 양분하려는 종교적이고 허위적인 이분법이 발을 들여놓을 수가 없다.

- 이점에서 과학과 철학은 역사성, 따라서 역동성을 대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 - 그렇다면 과학의 역사적인 혁명적 변화는 어떤 논리에 의해 발생하는가? (지구중심설 → 태양중심설, 고전역학 → 양자역학)

 

포퍼: "과학은 비판적 지성처럼 연속적으로 발전한다."

- 과학의 역사에서 인간은 자신이 이론적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주장을 경험의 잣대로 비판하고 수정해왔는데 이로부터 비판적 합리주의가 형성되었다.

- 포퍼는 과학이나 사회의 발전에는 인간의 비판적 이성이 핵심 역할을 담당한다고 확신했다.

- 이런 비판적 합리주의는 이성의 합리적인 추론만을 맹신하지 않고 논리적 추론을 항상 경험에 비추어 점검하려는 포퍼의 의지를 반영하는 입장이었다.

- 여기서 중요한 것이 반증 가능성이란 개념이다. = 어느 이론이 과학적이려면 경험으로부터 반박되거나 수정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뜻

- 그는 오직 비판적 이성을 통해 과거의 과학 이론과는 다른 새로운 과학 이론을 구성할 수가 있다고 보았다.

- 아인슈타인과 같은 비판적 지성을 통해서 과학은 새로운 이론을 만들면서 점진적으로 진보한다는 것, 이것이 바로 포퍼가 생각했던 과학의 발전이었다.

 

- 경험적으로 검증 가능하지 않은 이론으 ㄴ과학적인 이론이 아니라고 이야기했다.

- 프로이트나 마르크스의 주장에는 반증 가능성이 부재하다는 이유를 들어 그들의 이론은 과학적 논리에 근거하지 ㅇ낳았다고 맹렬히 비판했다. 

- 반증 가능성이 없는 철학이 어떤 사회를 지배하는 순간, 인간의 비판적 이성은 숨을 쉴 수가 없을 것이며 따라서 그런 사회는 닫힌 사회로 치닫게 된다고 이야기했다. 

 

쿤: "과학은 불연속적인 혁명의 과정을 거친다."

- 토머스 쿤은 포퍼의 생각과는 달리 과학이 누적적으로 진보하는 것이 결코 아니라, 혁명적인 단절을 겪는다고 주장했다. 쿤은 이런 혁명적인 단절과 변화를 패러다임이란 개념으로 설명하려고 했다.

- 쿤은 패러다임을 어느 주어진 시대의 어느 성숙한 과학자 사회에 의해 수용된 문제풀이의 표본 이라고 정의한다.

- 그는 각 시대를 장악하는 패러다임들이 서로 양립 불가능하고 동시에 통약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 양립 불가능하다: 두 가지 패러다임이 공존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
  • 통약 불가능하다: 두 가지 패러다임 사이에는 공통점이 없다는 것을 의미

- 비록 역사적인 순서로 진행되었지만 새로운 정상과학이 발생하는 과학혁명의 과정은 마치 장기 게임이 사라지고 새로운 바둑 게임이 도래하는 것과 매우 유사하다.

 

[포퍼와 쿤]

- 정상과학 시기에 과학자들은 패러다임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기보다는 그것을 맹신한다. 그렇기에 포퍼가 강조했던 반증 가능성, 추측, 논박, 비판적 이성 등의 개념들은 손쉽게 무력해진다.

- 하나의 패러다임이 지배하는 정상과학의 시기에도 과학자들이 풀기 힘든 난제들이 존재하였다. 그렇다고 해서 패러다임이 붕괴되어 정상과학이 와해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퍼즐들이 등장할 때,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이론을 수정하고 보퉁하면서 퍼즐들을 풀려고 할 것이다. 비판적 합리성이 아니라 무비판적 확신이다.

- 과학혁명은 사후적으로만 확인될 수 있는 우발성에 노출되어 있다. 정상과학의 붕괴를 과학혁명이라고 한다.

- 우리가 특정 에피스테메나 패러당미이란 규칙에 의해 지배될 때 우리는 그것을 의식하기 힘들다. 오직 새로운 에피스테메나 패러다임으로 개종했을 대만 과거에 맹목적으로 따랐던 에피스테메나 패러다임의 성격을 의식할 수 있을 뿐이다.

 

- 쿤과 푸코를 통해 이제 역사학은 과거 시대의 흥미로운 정보를 제공하는 단순한 역할을 그치게 된다. 현재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내적인 규칙을 반성하기 위한 성찰을 담당하면서, 역사학은 인문학의 중심에 당당히 서있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바슐라르, 과학과 문학 사이에서

 

 

 

 

 

[의문]

1장에서 소크라테스 이래로 철학은 과학을 비롯한 모든 앎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라고 이해되었는데 이것이 어째서 철학이 과학의 혁명성을 긍정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단어]

목가적 - 전원의 분위기처럼 평화롭고 고즈넉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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